친구 어머님의 장례식 20대 이야기



[우리 엄마, 지금 너희 병원에 입원해 계셔]


2012년. 스물여덟이 되던 해. 친구 L의 갑작스런 문자 한 통에 두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오고 한 동네에 살았던 L은 당시 유행하던 미니홈피를 통해 간간히 연락하다가 중국으로 유학간다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긴지 제법 오래 된 동창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에 있다는 것도 놀랄 일인데, 어머님이 내가 일하는 대학병원에 입원 해 계신다니. 뜻밖이었다.

L의 어머님은 철부지였던 어릴 적 나의 눈으로 봐도 참 곱고 단아한 분이었다. 아담한 키에 동그란 얼굴, 단정한 옷맵시에 차분한 말투와 걸음걸이가 마치 옛날 양갓집 마나님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L의 집에 몇 번 놀러간 적이 있는데, 서예에 일가견이 있으셨던 L의 어머님은 손수 붓글씨와 수묵화를 제작하여 집안 곳곳 액자에 걸어 두곤 하셨다. 스쳐 보기만 해도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하루는 L과 놀고 있는데 L의 어머님이 빨간 리본테잎과 얇은 철사를 주시며 장미 만드는 법을 직접 알려주셨다. 어머님 덕분에 난생처음 리본테잎으로 장미를 만들어 집에 가져 온 나는, 자그마한 화병에 장미를 꽂아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먼지가 쌓일 때까지 오랫동안 두고 보았더랬다. 장미 만드는 법을 차근차근 알려주시던 어머님의 따뜻한 음성과 손짓이 아스라히 떠오르는 듯 하다.

사실 친구에게 연락이 오기 10개월 전 즈음, L의 어머님을 병원에서 뵌 적이 있었다. L의 어머님이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내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의 검진내시경실에 오신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 동네에 살아도 길에서 마주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뵈니 반가움에 얼른 인사를 드렸다. 검진가운을 입은 채 나를 알아보고 방긋 웃어주시던 어머님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검진 결과 특별히 이상 소견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대관절 무슨 이유에서 입원을 하신건지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다. 문자를 확인하고 통화를 하는데 이상하리만큼 담담한 친구의 목소리에 심장이 덜컥 앉는 기분이었다.


[새벽에 화장실에서 쓰러져 계신걸 아빠가 발견했데. 연락 받고 중국에서 바로 들어왔어. 수술하고 지금 중환자실에 계시는데 의사 말이 상황이 좋지는 않은가봐......]
 

뇌출혈이었다. 목덜미에 파르르 소름이 돋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기계적으로 너무 걱정 말라고 좋아 지실거라고 위로의 말을 전했지만 소름이 목덜미에서 팔목까지 내려왔다.  발견하자마자 병원으로 이송하여 응급수술을 하였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였다. 보호자 면회를 갔는데 의식불명인 어머님의 얼굴이 퉁퉁 부어 알아보는 것 조차 힘들었다는 친구의 말에 그저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친구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OO병원. 장례식장]


문자를 확인하고 바로 반차를 내어 장례식장을 찾았다. 처음이었다. 친구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한 것도. 내 두 발로 친구 어머님의 장례식장에 찾아간 것도. 그리고 까만 상복을 입고 머리에 하얀 핀을 달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본 것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낯설었고 슬펐다. 간호사로 대학병원에 근무하며 숱하게 환자를 보았어도 우리의 부모님은 아직 젊고 청춘이며 건강하게 늘 곁에 있어 주실 거라는 막연하고 당연한 아니, 당연해야만 했던 어리석은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눈물이 얼룩진 파리한 얼굴로 와줘서 고맙다고 밥 먹고 가라고 덤덤하게 자리를 안내하는 친구가 안쓰러워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친구와 근 10년만에 재회하는데 이런 일로, 이런 곳에서, 이런 모습으로 만나게 될 줄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평생 철부지일 것만 같던 우리가 이제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고, 부모님의 건강을 챙겨야 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는 순간, 새삼스러움과 서글픔이 밀물처럼 가슴에 차올랐다.

그리고 까만 테잎이 사선으로 걸쳐있는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또 빌었다. 약 1년 전, 나의 일터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었던 그 때의 그 고운 어머님을 떠올리며, 초등학교 시절 빨간 리본테잎으로 장미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시던 그 때의 그 다정한 어머님을 떠올리며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그리고 외동딸 친구 L을 하늘에서 잘 지켜봐주시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덧글

  • 애이불비 2016/07/02 18:18 # 답글

    (끄덕끄덕..) 우리 부모님은, 내 형제는 아직 젊다고 자신도 모르게 안심하고 있던 내 자신을 돌아봅니다. 3주 전에... 여명 일주일이라던 새언니를 만나러 급하게 귀국했으나 결국 장례식장에서 입관할 때 만났어요. 아들 3형제에 막내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요... 참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옛 말, 사무칩니다.
  • 비너스 2016/07/03 15:28 # 답글

    아... 어린 자식들을 두고 어찌 그리 허망하게 떠나셨단 말인가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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