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평범한 듯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20대 이야기

글을 쓰기 전에 문득, 봉사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하여 찾아 보았습니다.
 

봉사 [봉ː사] 奉仕
[명사]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입시를 위해 취업을 위해 기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자의 반 타의 반 적잖게 봉사 활동을 한 것 같은데 봉사의 의미를 들여다 보니 그 모든 시간들이 국가, 사회, 남을 위한 시간보다 나를 위함이 컸던 것 같아 사뭇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들을 당당하게 꺼내어 지금 이 공간에 끄적이려 하는 것은, 봉사의 목적과 대상이 어딜 향하고 있었든 그 시간 만큼은 스스로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평범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과거 봉사활동의 기억을 오랜만에 떠올리니 마음이 괜스레 촉촉해 지네요.


첫 봉사활동 지역은 바로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이었어요. 중학생이었던 당시, 지역 내 바르게 살기 운동회 회원이셨던 부모님을 따라 문산의 수해 복구작업에 동참하였지요. 집 근처 구청에서 다른 봉사자들과 같이 고속버스를 타고 문산까지 이동했던 기억이 아직도 머릿 속에 생생합니다. 문산에 도착했을 때 주변은 말도 못 하게 아수라장이었어요. 

4층짜리 연립주택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3층 높이까지 건물 벽에 흙탕물이 묻어 있었고, 여기저기 더럽혀진 옷가지며 생활용품 쓰레기들이 눈에 띄었지요. 장마기간 집중 호우로 동네 옆 하천이 범람하면서 건물 3층 높이까지 물이 찼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엄청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물이 많이 빠졌다고는 하나 아직 지하는 물이 빠지지 않아 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손수 물을 퍼내었고, 옷가지며 다시 쓸 수 있는 생활용품을 정리하여 씻는 일을 같이 도왔지요. 몸 여기저기 흙탕물이 튀는 것도 모르게 종일 열심히 도왔습니다.

또, 중학생 때 집 앞 동사무소에 방문하여 서류 분류 작업과 정리를 도왔던 기억이 납니다. 서류 작업을 하다가 글씨 하나가 틀려 담당 직원에게 말했더니 괜찮다고 놔두라고 했는데도 계속 뭔가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기어코 점심시간에 집에 가서 수정액을 챙겨 와 글씨를 고쳤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이라면 절대 그러지 않을텐데... 하하핫. 그 외에도 동네 우체국에 방문하여 하루 반나절 동안 크고 노란 바구니에서 우편물을 꺼내 정리함에 우편번호와 주소 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제대로 분류하지 않으면 어린 마음에 우체부 아저씨가 고생하실까봐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두 눈 부릅뜨고 했어요.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경기도 가평에 위치 한 꽃동네를 방문하였어요. 개인적으로 종교는 없지만 다니던 고등학교가 카톨릭 재단이었고, 꽃동네라는 요양기관을 처음 설립한 분이 신부님이었기에 우연한 기회에 참여하게 된 봉사였습니다. 2박3일 동안 꽃동네 중환자실에 계신 노인 분들의 손과 발이 되어 식사와 양치질을 돕고 주변을 청소하고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말벗이 되어 드리고 밤에는 빨래감을 정리하는 등의 봉사를 하였지요. 쉬는 시간에는 다른 건물에서 생활하는 장애인 분들과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밤샘 근무로 피곤했지만 지금까지도 굉장히 보람 찬 시간으로 기억에 남네요. (장애인 말고 다른 단어로 표현하고 싶은데 찾아보니 장애인이란 단어가 표준어라고 하네요. 혹시 다른 표현을 알고 계신 분은 살짝 귀띔해주세요.) 


대학생이 되어서는 아무래도 간호대학이라 봉사활동의 기회가 많았습니다. 교내 봉사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경기도 광주에 있는 너싱홈 그린힐에 방문하여 vital sign (바이탈 사인; 혈압 혈당 맥박 체온 4가지 생체활력징후)을 측정을 하고, 요양원에 계신 분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어깨안마도 해드리고 말벗이 되어드리는 등의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즈음부터 너싱홈그린힐과 같이, 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경치도 좋고 가정적인 분위기에 시설도 깨끗하고 전문간호사들이 상시 곁을 지키며 노인 분들을 돌보는 전문요양원이 각광받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또, 무더운 여름 날 대학 동기들과 함께 경기도 화성시에 찾아가 사랑한모금회 회원 분들과 함께 1박 2일 동안 숙소에 묵으며 봉사를 하였어요. 첫 날은 독거노인 가정방문을, 둘째 날은 의료봉사를 하였지요. 

치매 독거노인(최근에는 독거노인이란 표현 대신 홀몸어르신이란 말도 쓰입니다.) 어르신의 집에 찾아가 청소와 빨래를 했는데 처음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안의 위생상태가 너무나도 좋지 않아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반드시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가야 했어요. 집 구석구석 거미줄과 곰팡이가 보였고 냉장고에는 먹을만한 음식이 별로 없었으며, 심지어 바닥에 깔린 침구류 밑으로 각종 벌레가 많이 기어다녀서 요즘 같은 세상에도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분이 계시는구나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고무통에 이불을 넣고 발로 밟아 빨래를 하는데 구정물이 한참이나 계속 나왔어요. 빨래 후 두 다리에 일시적으로 두드러기와 가려움이 생길 정도로 위생상태가 심각했습니다. 둘 째날은 인근 지역주민들을 모시고 혈압 혈당 측정과 건강상담을 실시하면서 학생간호사로서 보람을 많이 느꼈네요.

같은 해에 삼성에서 주최한 제10회 사랑나눔 김장축제에도 참가하여 대학친구들과 함께 아주 열심히 어마어마한 양의 김치를 담궜던 기억도 납니다. 비닐 소재의 길다란 앞치마를 하고 양팔에 고무장갑을 끼고 정말 미친듯이 절인배추에 양념을 무쳤던 것 같아요. 정말 많은 분들이 김장축제에 동참하였고, 김장이 끝난 후 김치를 담은 박스를 한데 모아놓으니 고속버스 한 대 크기 보다 더 클 정도로 양이 많았네요. 까만 옷에 김칫국물이 여기저기 튀었지만 그 마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정도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인근 대학병원에 입사하여 근무하는 동안, 원내 의료진들과 함께 다문화가정을 위한 무료이동진료라든가 지역민들을 위한 건강한마당 무료건강검진 등 지역사회공헌 일환으로 진행 된 여러 행사에 인력지원을 나가게 되면서는 따로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어 봉사를 해야 겠다는 생각은 점차 흐려진 것 같아요. 바쁘다는 핑계, 피곤하다는 핑계, 봉사스펙이 더이상 간절하지 않다는 핑계들이 그 원인이겠지요?

기회가 된다면 재능기부 봉사활동 (예를 들어,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동에게 직접 찾아가 악기를 가르쳐 주는 등)을 하고 싶어서 최근에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비록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핑계로 따로 시간을 내어 봉사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간호사로서 직업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가 봉사와 희생 정신이기에 간호사로서 일하는 시간만큼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가능한 나 보다는 남을 위한 생각을 하고 행동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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