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받은 고액의 러브레터 20대 이야기

나이트 근무 중일 때 였다.
환자들의 수면환경 조성을 위해 복도와 휴게실, 병실 모두 소등에 들어가 병동은 어둡고 조용했다. 아직 잠에 들지 못 한 환자들이 휴게실에서 전화 통화를 하거나 보호자와 대화를 나누는 정도의 소음만 간간히 들려오고 있었다. 이브닝 근무자에게 인계를 받고 본격적으로 나이트 업무를 시작하며 병동 라운딩을 돌고 있을 때 였다. 어두운 병실에서 당일 수술을 받은 환자의 컨디션을 확인하며 IV PCA(자가통증조절기)가 잘 들어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간호복 주머니에 누군가가 손을 찔러 넣는 것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옆을 보니, 난소암으로 항암치료 중인 김OO 환자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반으로 접힌 종이봉투가 만져졌다.

"어머니, 이게 뭐에요? 저한테 러브레터라도 쓰신거에요?"
"응, 자기한테만 주는 거니까 다른 선생들한테는 비밀이야."


나즈막한 목소리로 묻자 어머님이 쉿- 제스처를 취하며 말씀하셨다. 환자에게 러브레터를 받은 건 처음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고맙다고 잘 읽겠다고 말씀드리고 병실을 나왔다. 그렇게 환자에게 러브레터를 받았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채 정신없이 일을 하고서 퇴근시간이 다 되어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주머니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고 그제서야 러브레터가 생각나 꺼내보았다. 그런데 기대했던 편지는 온데간데 없고 10만원짜리 신세계 상품권 1장이 들어있었다. 깜짝 놀라 퇴근길에 병실에 찾아가 어머님에게 봉투를 돌려드리며 말씀드렸다.

"어머니, 정말정말 감사한데 마음만 받을게요."
"왜? 부담스러워 그래? 그동안 너무 잘 해줘서 그런건데."
"네.... 정 그러시면 다른 선생님들하고 같이 먹게 맛있는 빵이나 사다주세요."
"........"

최대한 환자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돌려 말한다고 노력했는데 어머니의 얼굴에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괜히 죄송한 마음에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있는데, 잠시 무슨 생각이 떠오르셨는지 내게 일단 봉투를 가지고 있으라고, 당신이 다 알아서 하시겠다고, 걱정 말고 있으라고 말씀하시며 사라지셨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출근하자마자 병동 탈의실로 향하고 있는데 어머님이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는지 복도에서 반갑게 맞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다 알아서 했으니까, 자기는 부담 갖지말고 써. 부담되면 어머니한테 장 볼 때 쓰시라고 드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말씀하셨다.

"내가 똑같은 상품권을 수간호사 통해서 간호사실에도 줬어. 다같이 맛있는거 사먹으라고. 그러니까 그건 부담말고 받아. 대신 자기한테만 준 건 비밀이야."

학부모에게 촌지를 받아 본 교사의 마음도 나랑 같았을까? 성의는 감사하지만 죄를 짓는 기분. 머리 속에 뇌물, 수수, 촌지, 로비같은 온갖 단어들이 맴돌았다. 출근하면 바로 돌려드리려고 가져 온 봉투를 가방에서 꺼낼 틈도 없이 당신이 다 알아서 조치를 취했다며 뿌듯 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담되서 정말 못 받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집에 돌아 와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환자가 얘기한대로 엄마한테 장 볼 때 쓰시라고 드리며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엄마가 상품권을 돌려주시며 환자가 널 생각해서 준 거니, 너를 위해서 쓰는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4년이 훌쩍 지난 지금 문득 환자의 안부가 궁금하다. 산부인과 병동에서 다른 부서로 로테이션 하기 전 마지막으로 본 환자의 건강상태가 썩 좋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괜한 불안이 몰려 온다.








덧글

  • 동굴아저씨 2014/01/24 17:43 # 답글

    ㄷㄷㄷㄷㄷ...
    정제계의 그 무언가!?
  • 비너스 2014/01/24 19:20 #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촌지 아닌 촌지를 받아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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